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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무대 위 ‘이 여자’들에 주목하라! “여배우 아닌 ‘배우’입니다만!”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마틸다’, 연극 ‘사막 속의 흰개미’ ‘텍사스 고모’ 등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 눈길
뮤지컬 ‘광화문연가’ 월하 구원영, ‘더 데빌’ X화이트·블랙 차지연 등 젠더프리 캐스팅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마리 퀴리’의 마리, ‘HOPE: 읽히지 않는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의 김선영·차지연 등도 라인업

입력 2018-11-19 07:30 | 신문게재 2018-11-1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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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연극 ‘사막 속의 흰개미’,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마리, 뮤지컬 ‘마담 퀴리’, 뮤지컬 ‘마틸다’, 연극 ‘텍사스고모’(사진제공=우란문화재단, 세종문화회관, 과수원뮤지컬컴퍼니, 라이브, 신시컴퍼니, 국립극단)

 

공연계에서 ‘세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10명의 배우가 플라멩코 리듬에 맞춰 등장해 무대를 둘러싼 플랫폼을 돌며 발을 굴러댄다. 남자들에 의해 속박되고 희생되면서도 당연히 그래야할 줄 알고 살아가던 여자들은 세상을 짓밟듯 발을 세게, 더 세게 굴러댄다. 전회 매진되며 지난 12일 막을 내린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여자배우 10명을 한 무대에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기능적인 역할, 희생·사랑을 강요당하는 무대 위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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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사진제공=우란문화재단)

“OOO은 기능적인 인물이에요.” 그리곤 “다소 함부로 다뤄지고 지나치게 비극적이긴 하지만…”이라며 “주인공을 각성시키고 성장을 돕는 캐릭터”라는 부연이 돌아온다.

 

“어느 때는 배우로 무대에 서 있는 게 힘들 때도 있다”는 여자 배우들의 하소연도 적지 않다.

‘알탕영화’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는 비단 극장가만의 일이 아니다. 연극, 뮤지컬 등 무대 위는 남자 콘텐츠 일색이었다.

사랑도, 세상을 바꾸는 일도, 사회의 정의구현도, 역사에 대한 기여도, 개인으로서의 성장도, 예술혼을 불태우는 것도 모두 남자들 몫이었다.

반면 여자들은 소유하거나 지켜주거나 희롱하는 존재였으며 남자들의 성장, 정의 구현, 역사적인 기여 등을 위해 희생당하거나 지고지순한 사랑을 주거나 이용당하는 ‘기능적인 인물’들로 자리매김해 왔다.

서울시극단의 단원이자 연극 ‘사막 속의 흰개미’(11월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입양아 출신의 곤충학자 에밀리아를 연기 중인 배우 최나라는 “많은 작품들 속에서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수단이거나 도구로 존재하는 경우가 상당했다”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작가가 써놓았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나 저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분석과 선택을 해야만 했던 역할들이 있었다. 인물의 수동적 행태에 공감가지 않는 상황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진보적으로 평가받는 창작진들 뿐 아니라 배우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배우’가 아닌 ‘여배우’에 익숙한 환경은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대관료를 고려해 공연일자를 가늠하는 등 손익분기점을 맞춰야하거나 여자가 주인공인 극도 남자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캐스팅에 관심이 쏠리는 현실도 무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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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사진제공=우란문화재단)

 

그럼에도 10월 24일 개막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단 한명의 남자 배우도 없이 10명의 여자 배우만으로 12일 마지막 공연까지 매진됐다. 20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의 유작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엄마 베르나르다 알바를 연기한 정영주는 “배우 앞에 성(性)을 붙이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여자인 배우 10명만 나오는 공연은 처음”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예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외면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여주고자 피를 토하기 위해 모였다”며 여자 얘기여서 모인 게 아니라 젠더만 생각하지 않으면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할 수 있는 작품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여자와 남자 얘기가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사람 이야기’를 하는 데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돼 왔던 분위기가 지속되던 공연계에서 ‘베르나르다 알바’처럼 눈에 띄는 여자 캐릭터와 그를 연기하며 주목받는 배우들이 최근 늘고 있다.


◇소녀 마틸다부터 에밀리아끼지 그리고 젠더프리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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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틸다’ 중 트런치불 교장 김우형(왼쪽)과 마틸다 이지나(사진제공=신시컴퍼니)

“그만해! 이 못돼 처먹은 뚱땡아!”

같은 반 친구들 뿐 아니라 허니 선생님(박혜미·방진의)까지 괴롭히는, 절대악 트런치불(최재림·김우형, 이하 관람배우·가나다 순) 교장에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야무지게도 외치는 소녀 마틸다(안소명·설가은·이지나·황예영)는 어리지만 용기 있게 스스로 성장하는 캐릭터다.

‘마틸다’(2019년 2월 10일까지 LG아트센터)는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oyal Shakespeare Company)가 ‘레미제라블’ 이후 선보이는 두 번째 뮤지컬로 로알드 달(Roald Dahl)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아들 밖에 모르는가 하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부모(강웅곤·현순철, 최정원·문성혁), 여성 혐오에 가까운 딸에 대한 경시, 죄의식이라고는 없이 저지르는 범행, 학대에 가까운 교장의 만행….

 

수많은 어려움에도 마틸다는 “잡아 잡수라고 다 포기하는 건 옳지 않아”라고 다짐하며 “그 누구도 나 대신 해주지 않지. 내 손으로 바꿔야지 나의 얘기”라고 외치는 소녀다. 부당한 일에 저항하고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는 소녀 마틸다로 인해 학대를 자행하거나 폭력에 시달리던 어른들도 처단되거나 떨쳐 일어나 당당하게 선다.

‘광주리를 이고 가시네요, 또’ 윤미현 작가와 최용훈 연출의 두 번째 의기투합작 ‘텍사스 고모’(11월 25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는 36년 전 텍사스로 결혼이민을 갔던 춘미(박혜진)와 열아홉에 한국으로 결혼이민을 온 키르기스스탄 여인(윤안나)에 극복되지 못하고 반복되는 사회 부조리, 인간의 문제를 빗댄 작품이다. 여성 문제나 여성만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과 사회 부조리를 짚는 극에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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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텍사스 고모’(사진제공=국립극단)

 

이에 대해 윤미현 작가는 “텍사스 고모로 대변되지만 남녀 구별 없이 인간에게 부여될 수 있는 이미지이자 적용되는 이야기”라며 “남성이 결혼이민을 가는 설정으로 ‘텍사스 고모부’는 어떨까 생각은 해봤지만 타인, 소외의 느낌은 여성이 더 강했다. 정서적 전달을 위해 이주자,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는 있지만 여성만을 대변하는 작품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36년 전 텍사스로 결혼이민을 간 춘미는 그곳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싶지만 두고 온 세 아이를 잊지 못한다. 춘미의 아이들, 부탄 여성이 낳은 아이(홍승만), 캄보디아 여성이 낳은 소철(이기현) 등을 통해 과거가 종식되지 않고 반복되는 사회의 부조리를 그리고 싶었다”며 “키르기스스탄 여인 또한 이 땅에 살면서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 아이를 통해 역사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인간 사회의 비극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여성 화자를 내세운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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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사막 속의 흰개미’의 에밀리아 최나라(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연극 ‘사막 속의 흰개미’는 아프리카와 호주 사막에서 발견되는 지표면의 둥근 모양, 미스터리한 페어리 서클(Fairy Circle)에 빗대 제때 청산되지 못하고 대물림된 부조리, 영문도 모른 채 “그렇다고 하니까” 식으로 패턴이 돼버린 믿음, 침묵으로 일관되며 곪을 대로 곪아버린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이 작품 중 곤충학자 에밀리아는 최나라의 분석처럼 “입양돼 국적이 다르지만 이 또한 자연현상으로 이해할 만큼 삶에 대한 객관적 포용력을 가진 인물”이며 “능동적 사고를 하며 문제의 이유를 파헤치려하고 노력하고 피해자인 지한(황선화)을 다독이는 인물”이다.

최나라는 “여자 캐릭터가 연구의 주체자이고 위로하는 주도자로 존재한다는 건 긍정적인 변화”라며 “요즘 젠더프리(Gender-free, 남녀 구분 없는) 캐스팅 시도도 있을 만큼 공연계에도 여성의 주체성과 자의식에 대한 좋은 변화가 일어나는 듯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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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더 데빌’ 중 X화이트(왼쪽)와 X블랙을 회차별로 연기하는 차지연(사진제공=알앤디웍스)

 

최나라의 말처럼 젠더프리 캐스팅도 늘고 있다. 뮤지컬 ‘광화문연가’(2019년 1월 20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죽음을 앞둔 주인공 중년명우(안재욱·강필석·이건명)를 시간여행으로 이끄는 월하(구원영·김호영·이석준), ‘더 데빌’(2019년 3월 1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빛과 어둠을 상징하는 X화이트(이충주·김다현·임병근·조형균·차지연)·블랙(차지연·김찬호·박영수·이충주·임병근)을 연기하는 차지연이 그렇다.

두 작품의 이지나 연출은 지난 10월 열린 ‘광화문연가’ 제작발표회에서 젠더프리 캐스팅에 대해 “월하는 무거운 작품을 쉬어갈 수 있게 만들어낸 관념 캐릭터다. 굳이 성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존재”라며 “실존인물, 역사적 인물 등처럼 성별이 명확해야 하는 역할이 아니라면 다른 작품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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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마리 퀴리’에서 주체적인 여성 마리로 분할 김소향(사진제공=과수원뮤지컬컴퍼니)
이어 “많지는 않지만 그럴 수 있는 작품은 100% 시도해서 설 자리가 좁아지는 여배우들이 야망을 가질 수 있는 역할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이기도 했다.


◇거장의 원고를 지키는 ‘HOPE’, 천재 물리학자 ‘마리 퀴리’ 등 여성캐릭터 눈에 띄는 작품들 잇달아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라인업 중에도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주요한 역할로 배치한 작품들이 눈에 띤다.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11월 27~2019년 1월 27일 JTN아트홀 1관, 이하 루드윅)의 마리(김소향·김려원·김지유), 뮤지컬 ‘마리 퀴리’(12월 22~2019년 1월 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의 마리 퀴리(김소향·임강희), 뮤지컬 ‘HOPE: 읽히지 않는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2019년 1월 9~2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이하 HOPE)의 에바 호프(김선영·차지연)가 그렇다.

‘악성’ 베토벤(김주호·이주광·정의욱)의 인간적인 고뇌와 면모를 다룬 추정화 연출·허수현 작곡가 콤비작인 ‘루드윅’의 마리는 극을 이끄는 내레이터이자 건축사를 꿈꾸는 당찬 캐릭터다. 루드윅 역의 정의욱과 청년 루드윅이자 조카 카를을 연기하는 김현진은 마리에 대해 “배우라면 꼭 한번 해보고 싶을 멋있는 캐릭터”라고 귀띔했다.

‘루드윅’과 ‘마리 퀴리’ 모두에서 마리로 분하는 김소향은 “(‘루드윅’의) 마리는 현재도 그리 많지 않은 여성 건축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빠 이름으로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물”이라며 “절망하고 포기하려는 루드윅에게 같이 꿈을 이루자고 다그치고 다독이는가 하면 조카 카를을 대하는 루드윅의 폭압적인 태도를 비난하고 바로잡으려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뮤지컬 '마리 퀴리' 영화 같은 티저 영상 공개!
뮤지컬 ‘마리 퀴리’(사진제공=라이브)

 

더불어 두 번의 노벨상 수상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꼽히는 ‘마리 퀴리’에 대해 “온갖 고난과 고뇌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쫓고 정의를 따르는 인물”이라며 “‘루드윅’ 마리와는 또 다른 주체적인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마리 퀴리’는 라듐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고 저명한 과학자가 되지만 그 연구가 초래한 비극에 좌절하는가 하면 이를 은폐하고 눈감으려는 세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마리의 이야기다. 라듐의 위해성에 의문을 품는 폴란드 여인 안느(김히어라), 라듐시계 공장의 작업반장으로 비인간적인 사측에 반기를 드는 조쉬(김아영) 등도 눈여겨볼 캐릭터다. 마리의 남편이자 연구동반자 피에르 퀴리는 박영수, 자수성가한 라듐시계 공장 대표 루벤은 조풍래가 연기한다.

 

뮤지컬 HOPE
뮤지컬 ‘HOPE’ 김선영(사진제공=알앤디웍스)

‘HOPE’는 문학 거장 카프카의 미발표 유작을 평생 지키며 살아온 모녀와 그들이 겪었던 반환 소송 실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현대 문학의 거장 요제프 클라인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이스라엘 국립도서관과 78세 노파 에바 호프의 30년 간 이어진 재판과정을 다룬다.

호프는 그 미발표 원고를 의인화한 K(고훈정·장지후·조형균)를 지키는 강인한 인물로 그려진다.

여자를 주체로 한 콘텐츠가 늘고 있는 추세에 대해 윤미현 작가는 “최근엔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것, 성별과 무관하게 ‘나’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최근 1~2년 가량은 여성들이 하고 싶은 생각과 가치관을 풀어내는 데 좀 더 집중이 된 것 같다”며 “그간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데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불합리한 점이 많았다. 윗세대가 불편해하지 않으며 살았고 때로는 그냥 넘어갔던 부조리한 일들이 못 견디게 불편해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은 그 부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성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늘었다고 생각한다”며 “정말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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