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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학조부모' 전성시대

입력 2023-12-11 14:08 | 신문게재 2023-12-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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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국제대학원 교수

가족분화는 자연스럽다. 부모(1차)와 분리한 자녀(2차)는 상식이자 표준이다. 다만 현실은 녹록찮다. 완벽한 자녀분가는 손에 꼽는다. 가족분화는커녕 얽히고 섥힌 세대의존적 관계설정에 익숙하다. 깔끔하고 확실한 분화보다 개입하고 연결된 종속이 일반적이다. 해서 시댁·친정(=본가·처가)의 갈등원류다. 물리적 분화와 경제적 독립의 미스매칭도 답답하다. 고무적인 일도 있다. 요즘세대를 필두로 ‘남성중심→양가동등’의 균형회복을 실현해서다. 그럼에도 독박육아로 인한 모계가족(친정엄마)에의 의존성은 불가피하다. 분리생활보다 협력가치가 부각된다. 즉 분가포기의 기대효과가 크다. ‘손주부양 vs 노후봉양’의 교환가치도 성립된다.

그래서일까. 독립을 전제로 한 가족분화는 갈수록 힘들어진다. 혼자든 부부든 무자녀가 아닌 한 성립불능이다. 맞벌이 중 자녀양육은 부모찬스 없이 완성되지 않는다. 분화 후 재집결한 중년캥거루족부터 근처에서 대가족화를 누리려는 근거(近居)트렌드까지 새로운 풍경도 등장한다. 목적은 하나다. 경제·시간·일손 측면에서의 부모찬스를 지원받기 위해서다. 즉 2대의 역할을 1대와 분업해 3대에 나눠넣는 자구적 선택카드다. 부모가 빠진 조부모와 손주의 커플결성이다. 손주학교는 ‘학조부모’를 대접한다. 할아버지·할머니의 역할·능력이 재구성되는 셈이다.

초고령화는 이렇듯 부지불식간 한국사회에 안착했다. 앞으로는 더 심화된다. 고령·노년 등 늙음을 둘러싼 고정관념은 편견·오해만 키울 뿐이다. 시대변화에 맞게 활용할 때 악재는 호재로 바뀐다. 초고령화가 활력기회로 변신하는 것이다. 기대효과는 많다. 늙음이 활력으로 전환되면 직접적인 생산 연장·추가 소비부터 간접적인 복지 강화·조세 확충까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준다. 가령 정년연장만 봐도 문제해결과 가치창출의 다목적함수다. 노년활력이 청년피폐와 대치되는 우려·현실은 최소화하고, 새롭고 달라진 가치창출에 주목하는 게 좋다. 학조부모의 등장은 소중한 성장기회다.

초고령화가 일찍 시작된 선행사례도 학조부모에 주목한다. 일본에서는 정년제도에 맞서 노년배척이 아닌 고령친화를 비즈니스화했다. 올드특화의 조직을 띄운 것이다. 2016년 미츠비시그룹이 설립한 자회사 MHI가 그렇다. 전체직원이 은퇴연령 이상의 학조부모다. 베테랑을 채용해 조언자로 파견하는 사업모델이다. 풍부한 현장경험과 축적한 집단지성을 유지하고 전파할 값어치가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호주의 웨스트팩 은행은 고령화된 창구직원의 근로유지를 위해 손주 대상 육아휴직제를 도입·운영한다. 고령여성의 창구직원 중 상당수가 손주양육을 힘들어해 만들었다. 손주가 2살이 될 때까지 최장 52주까지 무급휴가를 제공한다. 삶이 바뀌면 업무외적인 우선순위가 달라지는데, 이를 적절히 지원하면 업무몰입이 높아지고 인재유출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조부모는 인구변화가 빚어낸 신현상이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으나 외면·방치하면 곤란하다. 현상은 위기로 다가와도 기회로 바꾸는 게 승자의 법칙이다. 필요한 건 악재는 역발상으로 활용하고 호재는 경쟁력으로 강화하는 전략이다. 초고령화 시대 학조부모야말로 시대변화를 돌파하고 승률확대를 담보할 샘플사례로 제격이다.

 

전영수 한양대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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