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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민생의 봄, 멀었다

입력 2024-02-14 06:27 | 신문게재 2024-02-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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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남석 산업IT국장
입춘(立春)과 구정(舊正)을 지나 꽃들의 향연이 시작되는 봄이 왔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 뇌리(腦裏) 속엔 경쾌한 선율이 흐르고, 따스한 햇살 아래에 여울목 따라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명랑한 산새들의 지저귐,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 산업현장의 ‘쿵 쾅’ 기계 돌아가는 소리까지…. 3월을 준비하는 2월은 역동과 생명의 기운을 품고 새 기운을 잉태하는 새로운 절기 맞이하는 달이다.

하지만, 현실은 마냥 생명의 봄기운을 만끽하게 가만 놔두지 않는다. 설날 연휴 막바지부터 서울 수도권은 물론 전국 대부분이 온통 뿌옇게 퇴색했다. 잿빛 하늘 아래 연일 휴대폰을 울려대는 미세먼지 경보는 나들이객들의 설렘마저 앗아갔고, 그 자리는 초미세먼지용 마스크 몫일 듯 싶다. 봄의 환희와 역동을 가로막는 현실은 도처에 깔려 있다. 우리 사회의 미래 역동성을 잠식하듯 후행 하는 역사관과 답 없는 진영논리, 이익집단 간 끝없는 반목과 충돌, 저출산과 지역소멸, 파탄 난 경제와 피 말리는 취업전쟁 등등…. 온갖 악재 투성이다.

그러는 사이, 민생경제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서민들은 보험과 적금까지 깨가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해묵은 이념과 이권싸움에 혈안이다. 특히 올해는 선거까지 코앞에 있다 보니 정도가 훨씬 더 심각하다. 말라 비틀어져가는 경제나 비어가는 나라 곳간 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포퓰리즘만이 난무한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팍팍해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란 희망이 있다면 그나마 견뎌낼 수 있겠지만, 그 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올바른 방향과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 정치의 본질 아닌가.

우리 앞을 가로 막는 난재들만 따져보자. 당장 의사들의 집단행동과 3월 춘투(春鬪)’, 4월 총선(總選), 그리고 공공요금 인상과 4대 연금개혁이 켜켜히 쌓여있다. 한 마디로 ‘첩첩산중’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정부와 국회는 민생을 도외시한 채 위정자들의 리그만을 살찌우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갈등 조정이나 타협보다는, 시민들을 유튜브나 광장으로 불러 모아 증오의 함성만 키워가고 있을 뿐이다. 정치권이 소화(消火)보다는 방화(放火), 편 가르기에 훨씬 더 익숙하니 어디 국민들이 불안해서 살 수 있겠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시 ‘소군원(昭君怨)’에서 읊었다는 심정이 이러했을까. 1천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절은 어김없이 봄을 내어 주지만,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봄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인 모양이다. 거꾸로 가는 경제와 팍팍해지는 민생에 마뜩한 퇴로는 없어 보인다. 평화에 대한 갈망마저 꺾이면서 마음은 되레 꽁꽁 얼어붙고 있다. 쾌활한 서울의 봄, 따뜻한 민생의 봄은 언제쯤 찾아올까.

원래 고대 로마력에서는 3월(March)이 1년의 시작을 알리는 첫 달이었다고 한다. 전쟁의 신, 마르스(Mars)의 이름에서 유래됐지만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달력을 개정할 때 ‘January’(1월)를 첫 달로 하고 ‘February’(2월)를 두 번째 달로 지정하면서 March(3월)가 세 번째 달이 됐다고도 한다. 그래서일까. 3월의 시샘은 항상 이렇게 거칠기만하다. 올해도 3월의 봄은 저 만치 비켜서 있는 듯 하다. 겨울 코트나 패딩 대신 서둘러 봄옷을 꺼내 입고 싶다.

송남석 산업IT국장 songnim@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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