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오피니언 > 전문가 기고

[시장경제 칼럼] 보수이념의 실종과 복원

입력 2018-08-13 10:48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장대홍 교수
장대홍 한림대학교 명예교수

작금의 정치상황은 민중혁명의 진행과정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현 정권은 집권초기부터 촛불혁명 정권임을 호언해온 데 이어, 자신들의 이념적 틀에 맞춘 국가건설 청사진을 걸고 무리하게 정적들의 구금, 전 정권의 흔적 지우기, 친북한 정책의 추진과 각종 사회주의식 개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의 열정은, 비록 민주주의 외피를 벗지 않았고, 단두대를 등장시키지도 않았지만, 그 무모함, 과격성과 잔인성에서 프랑스 혁명기의 개혁 전문가들과 다름없어 보이기도 한다.

또한 그들에게 적극 동조하는 노조, 언론, 사법부, 국회와 일부 지식인들, 그리고, 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대중의 행태를 보면, 우리 사회가 베네수엘라, 베트남, 우크라이나의 전철을 밟을 거라는 걱정을 금할 수 없다.

더욱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여기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자칭 정통 보수정당이라는 거대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아직도 당권 싸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집권세력에 맞서 투쟁할 능력도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지난 2년간 아스팔트를 메우며, 줄기차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수호를 외쳐온 수많은 애국시민들의 불신을 받고, 그들을 대변하지 못하는 집단임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들은 지난 4개월 간, 두 차례나, 전형적인 좌파 정치꾼을 위원장으로 영입해서 당혁신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드는 이상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들이 진정한 보수이념을 가지고 있지 않는 기회주의적 정치꾼들이거나 사이비 보수라는 증거다.

소위 보수정치권이, 안보 이슈를 제외하면, 이념적으로 좌파 정치권과 동조하는 현상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중도 실용주의를 내세워 동반성장 정책, 골목 상권보호와 같은 친서민 정책을 추진했고,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일부 규제 개혁에도 불구하고 기업규제 강화, 복지지출의 급증으로 나타났으며, 보수여당인 새누리당은 노골적으로 좌 클릭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케이토 연구소가 발표하는 전 세계적 자유지수는 개인자유의 감소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들 두 보수 정권기에서 인간자유지수의 순위는 159개국 중 24위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서 35위로 내려갔다. 지수 값은 10만점 중 7.98로 여전히 상위 수준이고, 세부지수인 안보와 안전, 언론과 표현의 자유 항목은 세계 최상위 수준을 유지하였지만, 경제적 자유지수의 하락이 두드려졌고, 특히 정부규모의 확대, 사법체계와 재산권 지수는 세계평균을 밑도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수정치권이 자유를 경시하는 경향이 이념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인지, 일반대중의 자유에 대한 인식부족에 편승하기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둘 다일지 모르겠다. 근대적 보수이념, 영국과 미국에서 정착되었으며, 이승만 박사가 정확히 이해하고 신생 대한민국의 사상적 기초로 심으려 했던, 이념은 자유주의적 보수이념 (libertarian conservatism)이며, 자유, 생명, 재산권의 보호를 최상위 가치로 보는 고전적 자유주의 정신과 분리될 수 없다.

보수주의가 공산주의, 집단주의, 전체주의적 체제를 거부하고, 작은 정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 이념적 특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주의를 낡은 이념, 기득권 보호에 치중하는 구태이념, 꼰대 이념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보수주의는 무엇이든 낡은 것만 고집하는, 탈이념적이며 비이성적 성향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한다.

근대 보수주의의 원조인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 혁명이라는 민중혁명을 신랄하게 공격한 것은 이성만능주의가 설계한 혁신체제와 전체주의 국가권력, 루소의 낭만적 감상주의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비인간적 사회, 평등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개인 자유의 파괴, 무시무시한 도덕성의 붕괴와 혼란에 대한 경고였다. 그는 도덕성을 정치체제를 초월해서 형성되는 가치로 보았고, 자유 없이는 얻어질 수 없는 덕목으로 이해했다.

그가 전통을 존중한 것도 자연권으로서 자유가 보호되는 전통을 의미하였으며, 이는 도덕과 사회를 자생적 질서로 보는 하이에크의 견해와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된다. 버크는 이런 개인 자유를 보호하는 존재로서 국가라는 신념에 투철한 휘그당원이었으며, 일반적 오해와는 달리, 구 왕정체제를 옹호하지 않았다.

실종된 우리의 보수이념을 복원하려면, 이런 보수주의 정신을 되살리고, 이를 실천할 정치세력을 길러 나가는 길 밖에 없다. 우리 후손에게 자유와 번영을 넘겨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장대홍 한림대학교 명예교수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