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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폴 크루그먼 교수의 반성문 무게

입력 2022-08-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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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1자 뉴욕 타임스(NYT)에는 “인플레이션에 관해 제가 틀렸습니다”라는 크루그먼 교수의 반성문이 실렸다. 이는 “극도의 당파성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 우리 시대에, 자기 확증편향을 부추기는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당신이 무엇인가에 잘못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 타임스 오피니언에서는 선의의 지적 논쟁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모두 쟁점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재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NYT의 기획 의도에 따라 게재된 것이었다. 이제 반성문의 내용을 살펴보자.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기 추진된 1조 9천억 달러(약 2천 5백조 원) 규모의 미국구조계획(American Rescue Plan)의 결과를 두고 벌어진 경제학자들 사이의 격렬한 논쟁에서 일부는 구조계획이 매우 위험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를 했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해 팀’이었고, 결과적으로 이는 매우 잘못된 예측이었다.”

그런데 이 논쟁은 상반된 경제 이념진영 간의 것이 아니라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을 필두로 한 ‘인플레이션 팀’이나 ‘안심해 팀’ 모두 같은 중도좌파 성향의 케인스 학파 경제학자들이어서 쟁점은 정부 재정지출 ‘승수’에 모였다. 구조계획의 방대한 지출에 정상 규모의 승수효과가 발생한다면 경기가 과열되고 이는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이 ‘인플레이션 팀’의 경고였다.

반면, ‘안심해 팀’은 두 가지 이유에서 ‘승수’가 정상보다 낮을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계획의 큰 부분인 납세자들의 수중에 들어가는 일회성 현금 지급은 소비되기보다는 저축될 것이고, 다른 큰 부분인 주 및 지방정부 보조금은 여러 해에 걸쳐 점진적으로 집행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기이한 점은 ‘안심해 팀’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는데도, 물가가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팬데믹과 관련된, 예를 들면, 감염의 위험이나 록다운으로 서비스 구매는 감소하고 재화의 구매는 증가하는 소비구조의 변화, 와해하였던 해운 및 항만시설 같은 국제물류 시스템과 붕괴한 글로벌 공급망에 기인하는 생산 차질을 겪는 산업부문에 국한되었던 인플레이션이 점차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였다.

노동시장에서의 구인난이 경제의 생산능력 감소와 임금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또한 COVID-19의 영향인 조기퇴직, 이민 감소, 보육시설 부족 등이 원인이다. 올해 들어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 대도시들의 록다운이 인플레이션의 추가적 압력으로 작용했다.

“여하튼, 이번의 경험은 겸손의 교훈이었다. 아무도 안 믿겠지만, 2008년 금융위기 여파에서 표준경제모형들이 꽤 잘 작동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2021년에도 그 모형들을 적용했다. 돌이켜보면 COVID-19가 바꿔 놓은 새 세상에는 기존모형의 외측 삽입 정도 가지고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야만 했다.”

위에 인용된 NYT의 기획 의도 중 생략된 부분에는 ‘가장 심각한 잘못이나 가장 사소한 잘못이나’라는 문구가 있는데 크루그먼 교수의 반성문은 사소한 잘못에 관한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그가 써야 할 또 하나의 반성문이 있다.



꼭 써야 할 심각한 잘못에 대한 반성문



지난해 12월 3일 자 “돈이 다가 아니다 (Money Isn’t Everything)”라는 그의 칼럼에 관한 얘기다. 칼럼 제목이 “인플레이션은 항상 어디서나 통화적 현상이다”라는 통화주의 모토의 부정이다. ‘항상 어디서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초인플레이션의 경우에는 옳았지만, 이자율이 영에 가까울 때는 통화정책과 인플레이션이나 성장과의 상관관계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대공황과 2008년 대침체기가 사례라며, 대공황에 분석의 초점을 맞춘다.

이는 케인스 학파와는 경쟁 관계인 통화주의 모토의 부정뿐 아니라 밀턴 프리드만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인 ‘대공황 연준(Fed) 책임론’까지 겨냥한 것이다. 탄탄한 연구의 결실인 ‘미국 화폐의 역사 1867-1960’의 중요한 내용을 부정하려는 크루그먼 교수의 전략은 단순화와 사실관계의 은폐다.

먼저 그는 1929부터 1936년까지의 총통화와 GDP 그래프(1929=100)를 제시한다. 명목 GDP는 거의 반토막이다. 실질생산의 감소와 큰 폭의 물가하락이 반영된 것이다. 총통화의 감소도 삼분의 일 이상이다. 그런데 통화량 감소는 통화정책 때문이 아니란다. 연준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본원통화뿐이고 총통화가 아니니까(재할인율의 역할은?).

이어서 같은 그래프에 본원통화까지 포함한 그림을 보여준다. 본원통화 그래프는 1930년부터 단조 우상향이다. 연준의 긴축적 통화정책 같은 것은 없었고, 따라서 총통화의 감소도 연준의 정책 탓이 아니라 주식시장 붕괴에 이은 예금인출 사태와 경기침체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간단히 두 변수의 인과관계를 뒤집었다. 과연 그럴까?

프리드먼과 슈워츠의 연구는 이런 부류의 반론을 염두에 두고, 산출이나 가격변수와 무관한 이유로 통화량의 변화가 발생한, 즉 통화량의 변화를 ‘외생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찾아 그 이후 나타난 산출과 가격의 변화가 외생적 통화정책의 결과임을 보여주었다. 그런 에피소드가 네 번 있는데, 첫 둘만 간략히 소개하겠다.

첫 번째는 1928년 봄에 시작되어 1929년 10월 주식시장 붕괴 시까지 지속된 신중하게 계획된 긴축 통화정책이다. 당시는 경기순환주기 상의 바닥(1927년 11월)을 막 지난 때였기에 경기과열이나 인플레이션이 긴축의 원인이 아니었음은 자명하다. 그러면 왜? 주된 원인은 신용을 ‘생산적 사용’과 ‘투기적 사용’으로 구분해 오던 워싱턴 연준 이사회의 이분법적 인식이 월가 주식투기에 대한 우려와 만나면서, ‘반투기’ 정책으로 긴축 통화정책이 추진되었던 것이다.

정책 수단은 현재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사용하고 있는 금리(당시는 재할인율)인상과 테이퍼링 두 가지였다. 1928년 7월에는 재할인율을 1921년 이래 최고 수준인 5%까지 올렸고, 연준의 보유국채 잔고는 1927년 말의 6억 달러에서 1928년 8월에는 2억 천만 달러로 감소했다. 통화긴축에 뒤따른 것은 물가하락과 경제활동 둔화였다. 경기의 정점이었던 1929년 8월에서 주식시장이 붕괴하는 10월까지 두 달 사이에 만도 생산, 도매물가, 개인소득이 연이율로 각각 20%, 7.5%, 5% 하락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1931년 10월 있었던 또 다른 통화 긴축정책이다. 파운드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에 밀려 9월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자, 투기세력들의 관심이 달러화로 향하면서 외국 중앙은행들과 개인 투자자들이 달러자산을 금으로 앞다투어 바꾸면서 금의 해외유출과 은행예금 인출사태와 은행파산이 현실이 되었다. 연준은 금의 해외유출에 강력하게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뉴욕준비은행은 10월 9일 재할인율을 1.5%에서 2.5%로 인상했고, 일주일 만인 16일 또 3.5%로 인상해, 일주일 사이에 2% 포인트 인상이라는 연준 역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빠른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이 조치로 금의 해외유출은 저지했지만, 뱅크런과 은행 파산은 가속화되었다. 10월에 만도 522개의 상업은행이 문을 닫았다. 긴축적 통화정책과 그 결과인 은행시스템의 붕괴로 통화공급은 급락했고, 생산과 가격은 더 가파르게 하락했다.

위 두 사례만으로도 우리는 투기응징이나 달러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즉 국내 생산이나 물가수준과는 관련이 없는 긴축 통화정책으로 연준이 대공황기에 통화공급을 축소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크루그먼 교수가, 문제의 칼럼에서, 연준은 총통화 중 본원통화 만 통제할 수 있고, 예금통화는 직접 통제할 수 없는데 대공황기에 본원통화는 증가했으므로 통화량의 감소가 연준의 통화정책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한 것은 경제학에 깊은 이해가 부족한 일반 독자들이 프리드먼 교수의 대공황 연준 책임론이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판단을 하도록 오도한 것으로 보인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제라도 자신이 쓴 칼럼의 왜곡을 바로잡는 진정성 있는 반성문을 써서 “타임스 오피니언에서는 선의의 지적 논쟁이 가능하다는” NYT의 기대를 뒷받침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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