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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동국제강 출신 '아이언맨' 황우석씨…“안되는 게 뭐있노?”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입력 2016-12-26 07:00 | 신문게재 2016-12-2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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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는 게 뭐있노. 쌓은 만큼 결과가 나오는 거 아이가."

황우석(66)씨는 한국의 '아이언맨'이다. 그가 영화같이 멋진 슈트를 만들지는 않지만, 기술자가 지녀야 할 열정과 노력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950년 6.25 전쟁둥이로 태어나 기술자로서의 자긍심 하나로 장인 반열에 오른 황우석 씨. 고로의 쇳물처럼 뜨거운 삶을 살아온 황 씨를 찾아가 그의 '철강' 인생을 들어봤다.

 

황우석 씨_인물(최종)
동국제강 출신 기술자 황우석 씨.(사진=박규석 기자)

 

황 씨와 철강의 인연은 1966년 2월, 동국제강에 입사하면서다. 당시 그는 부산에 위치한 동국제강 제1압연 공장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7세의 ‘까까머리’ 황 씨는 1100℃의 고열과 12시간 맞교대 근무라는 힘든 환경을 ‘기술을 배우겠다’라는 의지 하나로 버티고 또 버텼다.


“힘든 일과로 몸이 쇠약해지고 있던 어느 날 담당 반장께서 나를 불러 신설되는 압연공작부로 가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입사했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부서 이동을 수락했다. 월급이 줄어드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기술을 배우겠다는 의지 하나로 마음을 굳혔다.”

압연공작부에서 황 씨는 본격적인 철강 기술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그는 △용접기능사 △기계가공 기능장 △용접기능장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등의 자격증을 잇따라 취득하면서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 나갔다.

“처음에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공부할 때는 기능사 제도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수험서 같은 게 없었다. 그래서 헌 책방에 찾아가 당시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기계 책을 보거나 주변 사람한테 물어보면서 공부를 해야 했다. 부족한 정보는 팸플릿을 보며서 채우기도 했다.”

 

공부자료(최종)
황우석 씨가 정리한 ‘기술지도사 자격증’ 학습 노트.

 

이 같은 그의 ‘학구열’은 2002년에 취득한 기술 지도사 자격증 때도 식지 않았다. 그때 그가 공부한 책은 700페이지가 넘었다. 주어진 시간은 1년 4개월이었고, 어려운 영어와 한자 등이 많은 책을 마스터해야 했다.

“나는 밥 먹고, 일하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공부하는 데 투자했다. 출퇴근의 경우 통근 버스가 있었지만 지하철을 이용했다. 통근 버스가 지하철만큼 일정한 시간으로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했다. 지하철을 타면 대략 20분 정도를 절약할 수 있었는 데, 큰 책을 볼 수는 없어 메모지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틈틈이 공부했다. 회사 점심시간에도 짬을 내 책을 읽었다. 휴게실이 있었지만 같이 근무하는 동료에게 피해가 될 것 같아 사용할 수 없었다. 연구 끝에 공장 구석의 빈자리에 접이식 책상을 만들었다.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어 기쁘고 행복했다.”

황 씨의 지식은 이론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현장에서 익힌 경험과 지식을 융합, 조금이라도 자신의 작업 현장과 동국제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동국제강은 ‘찬넬’이라는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계획을 짜던 시기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설비에 ‘콜드샤’의 일부 부품을 통째로 교체해야 했지만 일이 쉽지 않아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결국 위에서는 황씨에게 방법을 찾아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접이식 의자(최종)
황우석 씨가 공장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했던 접이식 책상.

 

그는 고민 끝에 ‘JIG(일종의 틀)’를 사용해 교체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장비 교체 시간을 하루에서 2시간으로 줄일 수 있었다. 또 콜드샤에 부착된 ‘칼날’을 재생해서 사용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이 칼날은 시간이 지나면 교체를 해줘야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황 씨가 개발한 방법은 상대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어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의 인생이 열정과 노력 그 자체였다고 자부하는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 노력을 하면서 재미를 찾고,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라 온다”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강조했다. 또 황 씨는 취업난에 고생하는 한국의 젊은 청년들이 안쓰럽다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 데,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부산 사나이의 ‘패기’는 여전히 넘쳤다.

“한번 제대로 관찰해서 뚝심 있게, 세게 부딛혀 봐라. 젊음이 좋은 게 패기 아니요. 막 쌔리 밀고 나가는 저력, 그런 게 필요한 거 아이가. 안되는 게 뭐있노? 쌓은 만큼 결과가 나오는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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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박규석 기자 seok@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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