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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아, 무협지', 남자들을 위한 최강 판타지

입력 2015-07-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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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의 ‘아, 만리성’(소오강호), ‘대륙의 별’(천룡팔부), ‘협객행’, ‘영웅문’ 시리즈부터 고룡의 ‘절대쌍교’, ‘다정검객무정검’(소이비도), ‘초류향전기’, 양우생의 ‘백발마녀전’, 와룡생의 ‘군협지’, 한림의 ‘소요장강기’, ‘신탐무’, ‘야랑전설’ 그리고 한참 작품 활동을 하다 홀연 자취를 감췄다 재등장한 전동조 작가의 ‘묵향’까지.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온통 무협지였다. 

 

식음을 전폐하고 잠을 포기한 채 읽고 또 읽던 무협지 목록을 외고 있자니 강호를 주름잡던 영웅들에 빠져들던 시절이 떠오른다. 

 

무림맹주가 되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고수들의 결투, 그로 인한 배신과 복수, 수십년 내공을 이용한 장풍과 경공, 항룡18장과 구음진경의 대결, 우연히 얻은 무림비서로 고수가 되는 과정과 의형제에 대한 맹세 그리고 다양한 매력의 미녀들…. 수십권에 달하는 시리즈를 사들여 밤을 불태우던 그때는 영웅들의 의리, 배신, 사랑 등을 통해 삶을 배웠고 기개를 다졌다.

 

 

◇무협지의 3대 요소, 아날로그적 상상력과 동양적 판타지 그리고 익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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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룡의'소이비도',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 전동조의 '묵향', 양우생의 '백발마녀전'.(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무협은 SF와는 또 다른 맛이 있어요. 둘 다 현실은 아니지만 무협은 뭔가 디지털 제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아날로그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상상력까지 가미되는 맛이 있거든요. 마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감정이입도 잘 되고….”


중학시절부터 무협지 좀 읽었다는 IT 하드웨어 전문가 이씨(44)는 무협의 매력을 ‘아날로그적 상상력’이라고 정의한다. 

무협지는 남자들의 최강 판타지다. 지질하고 고독한 현실, 부조리로 넘쳐나는 사회, 급변하는 시대에서 다소 미련하고 촌스럽지만 ‘영웅’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은 세상을 다가진 느낌을 선사할 정도였다. 게다가 좋다고 달려드는 똑똑하고 매력적인 미녀들이 넘쳐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거대 판타지와 실제 역사관이 절묘하게도 엮인 김용의 대작들은 그야말로 읽는 이의 혼을 쏙 뺀다. 우울하며 퇴폐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의 고룡은 자신의 작품인 ‘소이비도’ 속 이심환처럼 불우한 삶을 살았다. 양우생은 장단풍의 사랑, 탁일항과 연예상의 서글픈 로맨스 등으로 다소 밋밋한 스토리텔링을 만회한다. 

“부모를 잃고 우연히 사부를 만나 고수가 되고 복수를 하죠. 그 과정에서 아름다운 정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원수의 딸이거나 마교의 여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 단순하고 클리셰가 된 익숙함이 다소 떨어지는 리얼리티를 각인할 사이도 없이 중독되게 만들죠.”

무협지 마니아로 유명한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는 무협지의 가장 큰 미덕으로 익숙함을 꼽는다. 그는 이를 무협의 ‘세계관’이자 ‘동양판타지’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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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민 대표가 좋아한다는 홍칠공은 '영웅문' 3부작 천하 5절 중 북개에 해당하는 인물로 개방파 방주다. 사진은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 중 서독(장국영)과 북개 홍칠공(장학우).

“이런 세계가 있구나, 리얼리즘도 아닌 가상세계인데 돈독한 세계관을 구축한 작가들이 있다는 데 경이로움을 느꼈어요. 저도 그 세계를 창조하고 싶어 작가를 꿈꿨었죠. 이런 세계라면 왠지 저도 만들 수 있고 열심히 수련 하면 무협지 속 영웅도 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무협지를 읽으면서 독서내공을 다졌다는 그는 “좀 더 일찍 이 세계를 알았다면 훨씬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돼 있었을 것”이라고 한탄하기도 한다. 무협지 속 미인들이 좋아하는 남자들의 매력을 분석하기도 했는데 무공이 고강해야하고 정의롭지만 다소 미련하다. 

“저는 홍칠공이 너무 좋아요. 의협심도 강하지만 식탐이 강해 사랑하는 여인마저 떠나보내죠. 이후 넷째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그가 닮고 싶다는 홍칠공은 김용 소설 ‘영웅문’에 등장하는 천하 5절 동사서독, 북개남제, 중신통 중 ‘북개’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거지들로 구성된 개방파 방주로 ‘사조영웅전’ 주인공 곽정과 황용의 스승이며 2부 ‘신조협려’에서 양과를 사이에 두고 서독 구양봉과 결투를 벌이다 죽음을 맞는다. 그의 식탐은 황용·곽정을 비롯한 모든 인연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유병재부터 알리바바 마윈 회장까지, 무협마니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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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양우생의 '백발마녀전', 고룡의 '소이비도', '초류향전기', 김용의 '신조협려'.

‘극한직업’, ‘초인시대’ 등을 거쳐 연예계의 중심부인 ‘무한도전’과 YG엔터테인먼트까지 진격한 유병재 작가, 무협지 속 평등한 세상을 사랑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최동익 의원, 극렬 팬덤을 거느린 출판사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 등 역시 공공연한 무협지 마니아다. 

하물며 영화 ‘써니’, 드라마 ‘미생’, ‘맨도롱 또똣’ 등의 강소라는 중학시절 ‘비연신검’이라는 작품을 연재하며 인터넷 무협작가로 활동한 전적을 깜짝 고백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무협지 찬양론을 펼친다. ‘무협지를 안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 읽은 이는 없다’는 말을 여실히 증명하는 이들이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또 어떤가. 중국 항저우(杭州) 소재의 알리바바 본사는 그의 무협 판타지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그의 별호는 ‘풍청양’. 무협소설 ‘소오강호’ 속에서 ‘독고구검’이라 불리는 무림고수다. 적의 형세를 읽고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 특징인 검의 달인다. 

그의 집무실은 도화도이며 임원 회의실은 광명정이다. 도화도는 김용의 ‘사조영웅전’ 속 황용의 아버지이자 천하 5절 중 동사인 황약사가 아내를 잃고 고독하게 살아가던 섬이다. 입구의 미로 덕분에 외부침입이 거의 불가능한 요새이다. 

회의실을 일컫는 광명정은 ‘영웅문’ 3부인 ‘의천도룡기’에서 육대문파와 명교가 전투를 벌이는 곳이다. 무릉도원이자 요새인 집무실 도화도, 치열한 회의가 이뤄지는 광명정은 그의 경영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국경을 넘어서까지 확산된 마니아들에 중국은 각종 무협지를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 ‘영웅문’ 시리즈, ‘초류향’, ‘절대쌍교’ 등 인기 무협소설들은 해마다 캐스팅을 달리해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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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버전의 영상물로 제작되고 있다. 캐릴터 변주로 주목받은 인물이 '동방불패'다. '소오강호' 속 마교 교주로 여성화되가는 인물. 임청하가 연기해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양조위, 유덕화, 장국영, 이연걸, 유역비, 황효명, 임지령, 소유붕, 판빙빙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배우들은 신인시절 ‘녹정기’의 위소보였고 ‘의천도룡기’의 장무기였으며 ‘신조협려’ 양과와 소용녀, ‘절대쌍교’의 강소어·화무결, ‘백발마녀전’의 탁일항과 연예상, ‘천룡팔부’의 왕어언이었다. 

캐릭터 변주로 조연에서 주연으로 급상승한 인물이 ‘동방불패’다. 무림을 제패하기 위해 여성으로 변해가는 인물로 ‘소오강호’ 속 마교 교주다. 영화 ‘동방불패’에서 임청하가 연기해 더욱 빛났던 이 캐릭터는 주인공 영호충(이연걸)과 묘한 핑크빛 기류를 형성하며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다. 

과거 무협지 마니아였던 출판기획자 P씨(45)는 한때 서울대, 연대 등 도서관 대출 1위에 빛나던 ‘묵향’을 추천한다. “김용·고룡·와룡생·양우생 등 중국 작가의 작품을 읽다 한국 무협지를 읽다 보면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졸작들이었다”며 “하지만 ‘묵향’은 달랐다”고 회상한다. 

‘묵향’을 기획하고 출판했던 도서출판 명상의 이영기 대표는 ‘묵향’을 일컬어 ‘신무협’이라고 표현했다. 묵향은 무림의 적인 마교 인물로 철저하게 양육강식의 법칙을 따르다가도 마음에 드는 이에겐 대책없이 친절하다. 

오해에 적극 해명하지도 않고 여타 무협지 속 고수처럼 자비나 위엄도 없다. 하지만 그가 묘하게 여자들의 이상형인 ‘나쁜 남자’ 스타일이어선지 무협지를 절대 읽지 않던 여자들까지 독자로 흡수했다.


◇영화 ‘협녀’ 개봉 소식에 다시 설레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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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개봉소식을 알린 이병헌, 전도연의 '협녀, 칼의 기억'(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어느 샌가부터 마니아들마저 더 이상 무협지를 읽지 않게 됐다. 이에 대해 김홍민 대표는 “오래전 대가들의 작품을 뛰어넘는 신작들이 없다”고 지적하며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시각화나 재창조 동력을 잃으면서 무너지기 시작해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지난 4월 막을 내린 ‘빛나거나 미치거나’에 신율을 연기한 오연서는 무협지 속 여주인공을 꼭 빼 닮아 사랑받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 작품으로 “남자 팬들이 정말 많이 생겼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8월 13일 ‘협녀: 칼의 기억’ 개봉소식이 날아들었다. 무려 이병헌에 전도연이다. 여기에 가능성 넘치는 김고은과 2PM 준호가  최근 가장 활발한 활동기에 접어든 이경영과 김태우가 조연으로 합류했다. 

또 설레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고단한 현실에 최강 판타지를 선사하던 무협지를 주제로 수다를 떨었던 이들은 “이번 여름휴가에는 뽀얗게 먼지 앉은 무협지들을 다시 꺼내 정독해야겠다”고 입을 모은다. 바야흐로 무협지 정독에 최적화된 여름휴가철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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