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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정치는 망치로 한다"…핑계와 혼란의 숫자들

-생존의 숫자를 집어 삼키는, 공약집의 천문학적 숫자들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일 뿐 무한 생존욕망을 뚫지 못해

입력 2016-03-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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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제 금융증권부장
이승제 금융증권부장

얼마나 닮았는지 문패만 떼면 누구 집인지 알 길이 없다. 틈만 나면 옆집을 향해 온갖 욕설과 돌을 던지더니 이젠 식구들끼리 으르렁대고 있다. 옆집에서 가출한 사람을 슬쩍 자기 집으로 데려와 옆집을 성토하는 선봉역할을 맡기는 모습도 똑같다. 4년마다 한번씩 벌어지는 ‘밥그릇 전쟁’이 어김없이 시작됐다.

살고자 하니 무리를 이룬다. 어제의 동지가 적으로, 경쟁자가 파트너로 둔갑한다. 상대의 철학과 정치적 지향은? 돌아오는 답은 “상관 없다” 또는 “그런 사소한 건 나중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4년에 한 번꼴로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대단히 쉬운 질문이다. “뭐라고 비판하든, 내 살 길만 찾으면 된다.”

국회의원 직은 벤처사업과 여러 점에서 유사하다. 리스크를 뚫고 성공하느냐, 망하느냐. 단 1표 차이로 갈릴 수도 있는 운명의 갈림길을 통과한 의원은 배지를 다는 순간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거듭난다. 4년 후 다시 명운을 건 전쟁에 나서야 하지만 시간을 벌었으니 됐다. 거칠 것이 무엇이랴. 인구절벽, 고용절벽, 복지절벽, 내수절벽, 일자리절벽? “상관 없다.” 표를 얻기 위해 내건 공약(公約)은 그저 공약(空約)일 뿐 생존욕망으로 다져진 그들의 가슴을 뚫지 못한다.

이런 일이 4년마다 되풀이되는 이유는 뭘까. 대단히 어려운 물음이다. “무표정한 숫자 뒤로 숨었다.” 또는 “숫자에 현혹됐다.”

선거는 숫자다. 나의 숫자를 높이고 경쟁자의 숫자를 줄이는 게임이다. 1인 1표, 언뜻 공정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어쩌면 운명을 가를 단 1표, 유일한 관심사다.

숫자를 얻기 위해 숫자를 제시한다. 2020년까지 노인 일자리 78만7000개 확대, 공공임대주택 10년간 240만호 공급(새누리당) 일자리 창출과 복지증진에 5년간 약 150조원 투입, 청년 일자리 70만개 창출(더불어민주당). 선거 공약집은 현란한 숫자들로 넘쳐난다. 재정효율성, 포퓰리즘 우려, 달성 가능성, 기대 효과 등은 개의치 않는다. 목적이 불분명한 숫자들을 한데 뭉쳐 유권자의 마음을 현혹시키면 된다. 나를 찍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에겐 적당한 ‘핑계거리’를, 회색지대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에겐 ‘혼란’을 주는 숫자들…….

매달 월급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그 자체로 생존의 산물이다. 우리의 숫자는 어쩔 도리 없이 냉엄하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숫자를 볼모로 삼아 교묘하게 현혹시키고 강렬하게 겁박한다. 붙잡힌 우리의 숫자는 공약집의 천문학적인 숫자로 빨려 들어가 흔적 없이 소멸한다.

선거의 숫자는 이토록 파괴적이다. 니체는 말했다. “철학은 망치로 한다.” 모름지기 새로운 사상과 철학은 기존 틀을 깨부수며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은둔과 파격의 철학자인 니체의 말이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도 아직 멀었다. 한국 정치의 파격을 따라 오려면. 한국 정치는 당당하게 말한다. “정치는 망치로 한다.” 아차, 너무 줄였다. “정치는 상대의 머리를 향해 내리치는 망치로 한다.”

이승제 금융증권부장 openey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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