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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한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을 걸?

[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생애 첫 호캉스, '저렴VS나름의 럭셔리' 비교분석

입력 2021-12-07 18:30 | 신문게재 2021-12-0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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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상태
호텔 침구는 집에서 아무리 같은 제품을 구해다 덮어도 그때의 기분이 나지 않는 마법의 아이템이다.(사진=이희승기자)

 

미리 밝히자면 ‘호캉스’에 지극히 비관적인 입장이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호캉스’는 신조어이자  콩글리시로 영미권에서는 이러한 휴가를 호텔에서 보내는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 혹은 호텔 스테이케이션(Hotel Staycation)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편의시설이 좋은 곳, 이왕이면  바다에 인접한 호텔의 해수욕장을 이용하는 게 호캉스의 시초였지만 요즘엔 실내 수영장이나 스파, 바(술집), 마사지 등 평소 접하기 힘든 고급 서비스를 갖춘 호텔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포괄하는 모양새다. 

돌이켜보니 출장을 제외하고 호텔에 묵은 경우는 전무했다. 굳이 휴가를 와서 근처 관광지는 구경하지 않고 룸서비스 위주의 식사와 호텔 내 편의시설을 이용하며 지내는 걸 이해할 수 없기도 했거니와 숙소에 쓰일 돈을 아껴 체험이나 쇼핑, 음식에 쓰자 주의였다. 남녀혼숙이 아니라면 4인 도미토리(공동 침실)도 마다하지 않았다. 치안이나 위생만 괜찮다면 그곳에서 만난 인연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였으니까.

하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되면서 여행은 결국 사치가 됐다. 어느 CF의 표현대로라면 ‘처음으로 여행이 우리를 떠난 상태’가 된 것이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도심 속 호텔 체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특히 분리된 공간에서 안전한 휴식을 꾀하는 추세가 제법 눈에 띄었다. MZ세대들을 중심으로 호텔 유료 멤버십 가입도 높아지는 추세다. 

트리트리
크리스마스 마케팅에 빠질 수 없는 트리(사진=이희승기자)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자사가 운영 중인 유료 멤버십 ‘아이초이스’는 2013년 론칭 이후 가장 많은 회원수를 기록했다. 호텔관계자에 따르면 “멤버십 가입 고객을 연령별로 보면 2030의 선전이 눈에 띈다. 20대는 전년 대비 6배, 30대는 2.3배 급증했다. 덕분에 가입자 평균 연령도 51세에서 46세로 5세 가량 낮아졌다”면서 “코로나19에 대한 경계감이 다소 완화됐지만 아직 해외 여행은 힘든 만큼 여행 수요가 호텔 멤버십으로 옮겨간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그 중 특급호텔은 예상 밖 특수를 누리고 있다. 코로나 확산 여파로 해외여행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호텔들이 내놓은 연말연시 패키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가 내놓은 110만원대 크리스마스 패키지는 11월 중순 이미 완판 됐다. 서울 남산의 반얀트리 호텔은 1일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7분만에 100개 객실 완판을 기록했다.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서 겨울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이 많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회사에서 남은 연차소진을 적극 권하면서 자연스럽게 집 근처의 호텔을 알아봤다. 계절만 도와줬다면 제주도나 강원도를 꿈꿨겠지만 오롯이 ‘방에 콕 박혀 있을 곳’이 필요했다. 가격도 중요했다. 너무 시설이 고급스러우면 부담이 갈 것이다. “이 돈이면 OO을 사지” “가족 모두 킹크랩을 먹고도 남을 돈” “애들도 같이 올 걸” 등 타고난 걱정DNA가 발동하는 소심한 A형으로 휴식이 될 수 없을 게 뻔했다. 그렇다고 집 떠나서까지 궁상맞게 지내긴 싫었다. 출장이 아닌 이상 내 돈 주고 토요코인에 묵지 않고 싶은 심리랄까.

수확행
감히 ‘호캉스의 꽃’이라 이름 붙힌 조식서비스. 탄수화물은 죄가 없음을 기억하고 맛있게 냠냠.(사진=이희승기자)

 

레이다망에 걸린 호텔은 두 곳. 한국에 늦게 도착한 외국인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은 A와 가족 단위로 많이들 묵는 B였다. 공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A는 평일 숙박이 6만원 정도로 호텔급 시설을 저렴히 이용할 수 있는 기대감으로 결제한 곳이었다. 생긴 지 3년이 채 안된 곳으로 침구와 편의시설에 대한 점수가 높은 편이었다. 체크인을 하자 1층 편의점에서 교환할 수 있는 웰컴 드링크 쿠폰을 줬다. 샴푸와 비누는 제공되지만 치약과 칫솔은 개별 판매한다는 안내를  받고 룸에 들어가자 트윈 베드가 나타났다.

취향은 더블 베드지만 이틀간 머물며 새 침대에서 자고싶은 나만의 길티 플레저(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랄까. 요즘엔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그린카드를 침구 위에 올려놓으면 교체해주지 않지만 이번에 오롯이 숙소에서의 휴식을 위해 체크아웃할 때까지 청소 서비스도 하지 말아달라고 해놨던 터다. 그동안 사기만 해두고 읽지못한 책도 챙겨왔겠다 이제는 침대와의 합체만이 남았다. 그때 침대 옆 ‘숙소이용안내’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객실 내 넷플릭스 무료라는 문구가 눈에 띄자 어느새 책 대신 리모콘을 쥐고 있었다. 

하얼빈맥주
1인분에 35000원은 좀 비씨게 느껴졌지만 현지인 셰프의 맛은 역시 달랐다. 처음 호텔에서 먹은 훠궈.저 양과 소모양의 그릇을 사고 싶다고 했지만 한국어를 못하는 스태프로 인해 실패.(사진=이희승)

 

호텔에서의 첫 식사는 중국 훠궈장인을 영입해 문을 연 1층 식당에서 해결했다. 투숙객에게는 20% 할인을 해줘 반주로 곁들인 하얼빈 맥주 2병은 공짜인 셈이 됐다. 도심 속 호텔답게 창문을 열면 롯데마트와 길 건너 먹자 골목, 병원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필요한 걸 얻을 수 있는 이 상황이 묘한 안정감을 자아냈다.

그에 비해 3일째 묵은 호텔 B는 차로 A에서 2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이었다. 이 곳의 콘셉트는 ‘나만 알고 싶은 호텔’이다. 온수로 즐길 수 있는 인피니티풀(Pool)로 인해 평일에도 예약이 힘든 곳이었지만 취소자는 언제나 있는 법. 1박에 20만원대로 호캉스의 꽃인 조식 뷔페도 함께 예약했다. 가격은 비쌌지만 호텔 조식과 석식 중 고르라면 언제나 전자를 고르는 편이다. 2시에 체크인인데 A에서의 체크아웃이 11시라 도착해서 보니 1시간이나 남았다. 평소에 하지 않는 과감함을 시도할 차례였다. 

수영장
하루 2타임으로 정해진 인원만 들어갈 수 있는 인피니티 풀.(사진=이희승기자)

 

1층에 문 연 바(Bar)에 들어가 화이트 와인을 시켰다. 낮에는 카페, 밤에는 라운지로 운영되는 곳이었는데 낮술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건지. ‘요즘 애들’ 코스프레로 셀카도 몇장 찍으며 살짝 아쉬운 입맛을 다실 즈음 체크인 시간이 됐다. 수영장을 갈 마음이 급한 사람들은 부리나케 짐을 풀고 야외 풀로 달려갔지만 나는 12월에 아무리 온수여도 수영을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방역조치 완화로 간만에 문을 연 수영장을 만끽 하려는 그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갔지만 사우나로 발길을 돌렸다. 다행히 이곳은 두 세명만 몸을 담글 수 있는 야외 욕조가 있어서 간만에 노천욕을 하는 기쁨을 맛봤다. 

42도의 뜨거운 물에 담근 몸과 달리 젖은 얼굴과 머리카락은 차가운 공기와 맞닿으며 도리어 상쾌함을 안겼다. ‘그래 휴식이란 바로 이런 거지’란 생각으로 숙소에 돌아와서는 평소 기계치인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안내장에 써 있는 대로 블루투스 스피커에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플레이해둔 후 착한어린이가 잠드는 밤 9시에 곯아떨어진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놀라울 따름이다.

일출
실로 몇 년만에 다시(?)본 일출.(사진=이희승기자)

 

전날 일찍 자서인지 다음날은 해가 뜨기 전 눈이 떠졌다. 실로 오랜만에 바다 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봤다. 4만원 때문에 마운틴뷰로 할 것인지 바다뷰로 할 것인지 살짝 고민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반짝이는 황금반지 같은 해가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배가 고파졌다. 8시에 내려간 조식 뷔페에서 혼자 온 사람은 오직 나 하나였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식스팩 복근을 소유한 멋진 남자가 살짝 젖은 머리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마시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부모와 동반한 젊은 부부 혹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듯 보이는 연인, 남매 둘에게 이것저것을 먹이는 엄마, 임신 막달인 아내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남편 등 사이에서 나는 곧 닥칠 ‘피의 토요일’을 가늠도 못한 채 암호화폐 몇개를 소액으로 주워담으며 여유롭게 위를 채웠다. 그러고 보니 14살 노견인 토비가 혹시나 실수를 했을까 노심초사 깨는 아침(종종 모닝똥을 밟는다)이 아닌 순간은 실로 오랜만이다. 등교와 등원, 출근이란 저글링을 무한 반복해온 나에게 ‘호캉스’란 진정 필요한 거였음을, 다음달 카드값이 나오기 전까긴 만끽해야지.
 
글·사진=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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