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랑별곡’.(사진제공=극단 수) |
“나만 고생이여, 나만….”
곰살맞지도 살갑지도 않다. 거칠고 투박하며 서툴다. 평생을 군림하며 살아놓고도 화단을 만드느라 애를 쓰다 병이 난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보다는 퉁바리다. 그 퉁바리 속에는 분명 걱정하는 마음이 담겼지만 몸져 누워 심신허약 상태의 아내라면 서러울지도 모를 어투다.
2년여만에 돌아온 연극 ‘사랑별곡’은 그런 노부부의 사랑과 회한을 담고 있다. 2016년 ‘사랑별곡’의 특징은 2010년 초연 당시 강화도 사투리를 다시 소환했다는 것이다.
강화도 사투리에 대해 7일 오후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 참석한 구태환 연출은 “‘사랑별곡’의 언어는 아름답다. 이 작품이 가진 시와 같은 구절구절, 언어의 맛은 연극으로 표현할 때 더 아름답구나 하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연극 ‘사랑별곡’ 박씨 역의 고인배(왼쪽부터), 순자 역의 손숙, 이순재.(사진제공=극단 수) |
“나 그렇게 거친 사람아니에요. 곰살맞지는 못해도….”
남편 박씨를 연기하는 이순재는 “박씨는 아내를 쟁취한 사람이다.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지만 워낙 좋아해 쟁취하다시피 부부인연을 맺었다”며 “그 표현 방식이 거칠지만 옛날 우리 아버지들이 그랬고 우리 때도 일부 그랬다. 대박이 아버지(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이순재가 연기한 인물로 대표적인 권위적이고 아버지상)가 일반화됐을 때의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농촌의 투박함까지 덧칠되며 박씨의 사랑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생채기를 내기 일쑤다.
초연에 이어 다시 박씨로 무대에 오른 고인배는 “누구나 살면서 지나온 날을 후회할 때가 있다. 삶의 회환을 전면에 내세워 일상적인 대사로 풀었다면 자칫 신파로 흐를 위험이 있다”며 “하지만 이 작품은 대사를 시적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곱씹을만하다. 대사를 암기하고 직접 연기를 하면서 그 아름다움과 정서가 포근히 와닿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더블캐스팅된 이순재에 대해 “시적인 대사는 자칫하면 연극적으로 보이기 쉽다. (이순재는) 시적인 대사를 참 일상적으로 잘 풀어내 배우는 게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연극 ‘사랑별곡’의 이순재.(사진제공=극단 수) |
박씨를 연기한 이순재와 고인배는 생전에는 끝내 못하고 무덤 앞에서야 아내 순자에 대한 회한과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았다.
고인배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 등을 표현 못하는 박씨에서 예전 어르신들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이순재는 “아내 살았을 때 했으면 문제도 해결되고 아내도 더 오래 살았을 텐데…. 아내가 죽은 다음에 무덤에 정성을 들인다”고 이유를 전했다.
“자네 평생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해 미안히야. (당신이 가진) 나에 대한 미움을 용서하지 못해 미안히야. 옹졸한 사랑을 용서히야. 마지막 고백 장면의 대사가 가진 사랑의 깊이는 훨씬 깊습니다.”
연극 ‘사랑별곡’의 손숙.(사진제공=극단 수) |
아내 순자 역의 손숙은 “더 살면 깎이고 깎이고 닳디 닳아. 그러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많다. 딸이 남편이랑 못살겠다고 울고불고할 때 엄마(순자)가 하는 그 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고 전하기도 했다.
구태환 연출은 “한국은 급변하는 나라다. 이 작품을 통해 급변하는 속에서도 돌아봐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었다. 사람이 살면서 돌아봐야하는 것들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있을 삶의 회한 그래서 더 깊어지는 사랑으로 가을 문을 연 연극 ‘사랑별곡’은 10월 1일까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